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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Ep7. 잘못된 리더로 인한 인류의 흑역사, 최악의 독재자 히틀러

by 업글에이더 2023.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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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은 알쓸인잡 Ep7은 '인간의 흑역사'를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김상욱 교수님께서 이야기 하고 싶은 주인공은 아돌프 히틀러인데요, 히틀러의 일생과 리더로서 그의 모습, 그리고 히틀러 특유의 웅변 방법은 다른 영상에서도 많이 다루었으나 이번에는 김상욱 교수님의 알쓸인잡 버전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대전 당시 하루에 많이 죽은 날은 10만의 사람이 죽었는데, 이를 본 누군가는 피가 강을 이루고 눈에 보이는 땅 전체가 시체로 뒤덮였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서 600이라는 숫자는 상상하기도 힘든 수치라고 볼 수 있겠지요..ㅠㅠ

그래서 히틀러는 민간인들을 무참히 살해한다.
심지어 빨리 죽이기 위해서 최고의 수학자들이 열차 시간표를 계산하고
빠른 시신 소각을 위해 시신을 어떻게 배치할지까지 계산하는 잔혹함을 보였다고 한다.

김상욱 교수님은 당시 조선 전체 인구에 육박한다고 하셨는데, 혹시나 궁금한 마음에 현재 우리나라 인구수를 조사해 봤습니다.

통계청 발표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5천만이 조금 넘고 남녀의 수치가 대략 2천5백만 선을 보이고 있으니, 러시아 사망자 수치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대략 추측 할 수 있겠습니다.

출처: KOSIS(통계청, 장래 인구 추계)

이러한 대규모 죽음에는 단순히 개인의 의지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관여가 있었다고 생각하는게 맞겠습니다.

히틀러는 누구인가?

                                                                              

히틀러는 독일 사람이 아닌, 오스트리아 출신이라고 합니다.

가부장적이며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성장한 히틀러에게 유년시절의 기억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군 입대 영장이 나왔으나 히틀러는 도망을 다니기도 합니다.

입대를 피해서 도망은 다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아버지의 유산을 받기 위해서 오스트리아를 떠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24살이 되어 유산을 물려받은 히틀러는 독일로 망명을 하게 됩니다.

망명 후 히틀러에게 기회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연락병: 전쟁중 전방과 후방을 오고 가면서 연락을 전하는 역할로 히틀러는 임무에 충실하여 훈장을 수여받게 됩니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기억을 히틀러는 자신의 책 '나의 투쟁'에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군의 명령으로 나치당에 가입하게 된 히틀러는 감시를 해야 하는 본연의 임무를 잊고 그곳에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뜻밖에도 히틀러의 연설에 나치당은 설득당하게 되고 히틀러가 말을 잘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히틀러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는 유명세를 타게 됩니다.

사람들의 권유에 여기 저기서 자신의 말을 하기 시작한 히틀러는 어느덧 대중 선동가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훗날 히틀러의 유일한 능력은 사람들을 선동하는 능력이라고 평가받게 됩니다.

그는 어떻게 사람들을 선동했을까요? 당시의 정치인들과 히틀러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다른 정치가들의 나른한 연설에 사람들은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히틀러의 연설은 다르게 다가왔다고 합니다.

히틀러의 연설 노하우

처음에는 청중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린다고 합니다.

발표자가 아무런 말도 없이 있으니 청중은 어느 순간 조용해지면서 히틀러에게 주목하게 됩니다.

어느 정도 조용해지면 히틀러는 아주 조용히 자신의 말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히틀러 연설의 특징

히틀러는 분노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분노의 대상인 유대인들에게 혐오의 감정을 더해줘서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을 혐오하도록 했습니다.

그러한 분노의 대상을 정해주고 혐오의 감정을 조장하는 히틀러의 소리에 사람들이 현혹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히틀러의 이런 말에 국민들은 알아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독일은 배상금을 갚을 형편이 되지 않는 어찌 보면 국가 존패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승전국은 배상금을 갚지 못하면 독일땅을 점령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독일 국민들의 분노는 정부의 무능함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정부의 무능함이 표출되던 시기에 히틀러는 기회를 잡게 됩니다.

그렇지만, 쿠데타는 진압당하고 히틀러는 감옥에 가게 됩니다. 그러나, 히틀러는 이 시기도 기회로 이용하게 됩니다.

히틀러는 재판장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자신이 쿠데타를 주도했음을 인정하고, 어려운 시기에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고 자신이 만들 새로운 독일의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국민들은 실패했으나, 히틀러의 영웅적 태도에 열광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감옥에 있으면서 히틀러는 오히려 좋은 대우를 받게 되고, 국민들의 지지도 또한 더욱 높아지게 됩니다.

약 1년의 감옥형을 지내는 동안 히틀러는 자신의 자서전적인 책이자 이후 모든 악행의 근거가 된 '법적'같은 책인 "나의 투쟁"을 집필하게 됩니다.

이 책은 히틀러에 대한 편견과 자기 미화로 가득 찬 책이라고 합니다.

                                                                              

금융 타격을 이겨내기 위해서 다양한 정책적 협의가 이루어져야 했으나, 당시 독일 의회는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시기에 히틀러는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됩니다.

히틀러의 연설에 사람들은 반응하기 시작합니다.

나치당의 지지율은 2%에서 40%까지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지지율의 변화는 히틀러를 총리로 당선되게 해 줍니다.

히틀러는 위기상황에서의 국익을 이유로 많은 법안을 만들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독재 정치의 기반을 위한 준비가 히틀러 개인의 의지가 아닌,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지율을 올린 히틀러는

총통(전권 장악)=총리+대통령

당시 1920년대 유럽 전체의 상황은 볼셰비키 혁명을 비롯하여 공산주의 혁명이 활발하게 일어나 기존의 권력가들이 몰살당하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많은 내전은 소위 지배층, 권력층의 죽음을 부르게 했었고 이는 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이다.

그렇게 히틀러는 권력자들의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히틀러를 이용해서 표를 얻어서 권력을 잡자.
그리고, 히틀러를 치우면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그림은 20세기에 독재자 등장에서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합니다.

총리 당선 이후 가스실 대량 학살 사이 10년의 시간차 동안, 히틀러는 유대인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히다가 결국 대학살에 이르게 됩니다.

처음에는 시민권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시민이 아니기에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의 공직을 박탈당하게 됩니다. 공무원부터 실업자가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결국 유대인들은 수용소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학살을 당하게 됩니다.

즉, 계약직으로 있던 독일계 연구직들이 유대인의 추방으로 자신의 교수자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환호하게 됩니다.

오늘의 포스팅 내용은 다음의 원본 영상에서 캡처했습니다.

포스팅을 하면서 잘못된 지도자와 그의 말에 선동당하는 사람들의 부족함으로 인하여 죽게 된 많은 사람들, 문명의 퇴보 등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원본 영상에서 김영하 작가님께서 '정의'라는 단어에 대하여 언급하는 부분도 있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좋은 내용을 나누고 싶어 포스팅을 하고 관련 클립 영상을 링크하는데, 여건이 된다면 원본 영상을 구입해서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많은 것을 배우는 방송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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