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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인잡Ep4. 우여곡절 속에서 로블링 가문이 만든 뉴욕의 상징 현수교, 브루클린 다리

by 업글에이더 2023.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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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이야기는 로블링가에 대한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때는 19세기 중반의 뉴욕이라고 하는데 로블링이 다리 건설에 대한 계획을 시작했던 시기가 1857년이며 이후 다리가 완성된 시점이 1883년이라는 것을 알아두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흥선대원군이 1820~1898입니다.)

에디슨의 전구 발명이 1879년이니 이 시기에는 아직 전구가 보급되지 않았고 자동차보다는 마차나 배를 주된 교통수단으로 활용하던 시기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당시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오고 가기 위해서는 배를 이용하여 이스트강을 건너서 움직였어야 했었는데 이스트강은 폭이 1km 정도의 넓은 강이며 바다와 연결되어 있어서 물살도 강했다고 하는군요.

어느 날 이스트강을 배로 건너던 로블링의 가족은 얼어붙은 강으로 인해서 배가 고립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로블링은 이스트강을 가로질러 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1857년경으로 유추됩니다. 당시 로블링이 다리 건설에 대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당시 로블링은 독일 출신의 이민자로서 다리 건설과 관련하여 특허가 있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다리 건설에 대한 기술이 있는 사람이 얼어붙은 강물에 고립되는 상황이 기적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어떤 기적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지 이야기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로블링은 자신이 계획한 일을 이루기 위해서 주변에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합니다.

1857년 두 도시를 연결하는 다리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존 로블링의 노력은 결국 1867년 뉴욕 주 입법부를 통해서 회사 설립 허가를 받게 되고 1869년 사업이 시작되어 뉴욕의 상징인 브루클린 다리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브루클린 다리는 현수교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다리는 아래의 사진과 같이 여러개의 기둥이 상판 즉, 다리를 받치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나,

현수교는 아래와 같이 두개의 기둥에 곡선형의 강선을 연결하고 그 강선에 다리 즉 상판을 매달아서 다리를 만드는 방식이라 합니다.

조금 더 상세하게 표현하자면 아래의 그림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수교의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 첫번째 특징은 큰 주탑만 있으면 긴 다리도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사실, 두 주탑 사이에 연결된 현수케이블은 포물선의 방정식과 매우 유사한데, 이를 이용해서 주탑의 높이를 적절하게 맞춰주면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도 긴 다리를 건설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와 비슷하겠지요? 주탑의 높이로 거리를 조절 할 수 있으니 두 개의 주탑만 있어도 이스트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설할 수 있겠지요?

주탑과 주탑 사이의 폭이 넓으니 주탑의 높이를 잘 맞춰주면 배가 지나가기에도 충분한 공간을 형성 할 수 있게 됩니다.

때문에 당시 이스트강을 지나는 배들의 통행에도 어려움이 없다는 장점이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현수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주탑의 높이도 중요하지만 주탑과 주탑을 연결하는 현수 케이블, 그리고 현수 케이블에 다리의 상판을 매달아 두는 강선의 강도도 중요하겠지요?

강선의 경우 조금 쉽게 설명하자면 가느다란 와이어 몇개를 엮어서 조금 굵은 밧줄을 만들고 그렇게 완성된 와이어의 밧줄을 다시 엮어서 더 굵은 강도의 케이블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말은 쉽지만 실질적으로는 참 어려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루클린 다리가 최초의 현수교는 아니었으나, 존 로블링은 더욱 멋진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 없던 재료와 설계를 활용하여 다리를 구상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다리 건설을 위한 선행 작업으로 측량을 하던 존 로블링은 선착장과 바지선 사이에 몸이 끼는 사고를 당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파상풍에 걸려서 얼마 뒤 사망하게 됩니다.

큰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 모든 기초 작업을 하고 차마 시작도 못하고 목숨을 잃게 된 존 로블링. 그리고 다리 건설 공사는 자연스럽게 그의 아들 워싱턴 로블링이 이어받게 됩니다.

 

워싱턴 로블링의 사업을 이어받고 그가 해결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100m가 넘는 주탑을 어떻게 물 속에 튼튼하게 고정하는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워싱턴 로블링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일명 잠항공법을 시행하게 됩니다.

먼저, 테니스 코트 4개 크기의 큰 나무 상자를 만들어서 뒤집고 그것을 물에 넣습니다.
그리고 물에 들어간 상자에 압축공기를 넣어서 일명 에어포켓을 만들게 됩니다.

위의 자료화면과 같이 커다란 뒤집어진 그릇 형태의 구조물을 물속에 넣고, 회색으로 된 공간에 산소를 주입하여 작업공간을 만들게 됩니다. 수면 밖으로 나온 공간에 입구를 두고 사람들이 오고 가는 에어락이 있었다고 합니다.

에어락을 통해서 내려가고 사다리로 작업공간에 진입하게 되는것이지요.

전구는 아직 보급 전이라서 램프를 활용하고 낮은 높이와 1주일에 약 15cm를 겨우 파내는 속도로 작업 진행에 소비되는 시간은 길어졌습니다. 당연히 예산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요, 그러다 보니 결국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하여 작업 속도를 올리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화재를 비롯한 다양한 사고도 있었다고 하네요.

워싱턴 로블링은 공사 상황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결국 감압병에 걸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영하 작가님의 부연설명으로 혈관속에 질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병이라고 하네요.

당시에는 감압병이라는 질병에 대하여 사람들의 지식이 부족했으며, 때문에 작업자들이 죽는 경우도 많았고 워싱턴 로블링 본인도 이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워싱턴 로블링은 시력 상실과 난청을 경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수석 엔지니어의 부재에도 다행스럽게 다리 건설 작업은 잘 진행됩니다.

바로 워싱턴 로블링의 아내의 영향력이었습니다.

워싱턴 로블링의 아내: 에밀리 로블링

에밀리 로블링의 몸이 불편한 남편의 지시를 전달하며 현장을 관리하고 현장에 방문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작업 인부들에게 응원과 격려등을 전하며 공사 진행에 긍정적 영향을 하게 됩니다.

다리 건설에 걸린 14년의 시간은 기술적 도전에 대한 이유도 있으나 사람들의 의심과 염려에 대한 이유가 더 컸다고 합니다.

수석 엔지니어의 부재는 비리로 의심받고 당시 생소한 현수교의 구조에 사람들은 안전에 대한 의구심을 보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리 건설 전 존 로블링이 죽고, 다리 건설 시작 후 약 2~3년의 시간이 지나서 워싱턴 로블링이 감압병으로 공사에 관여하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14년이라는 시간 중에서 11년이라는 시간을 에밀리가 관여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여성 인권이 보장되지 않았던 시대적 분위기에서 에밀리 로블링이 현장 지휘는 어쩌면 그래서 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다 보니 에밀리는 남편의 말을 전달한다는 명목으로 현장의 많은 일을 본인이 해결하고 진두지휘 했던것이 아닐까 생각 됩니다.

여기서 김영하작가님께서 추리를 하시네요.

아마, 현장의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워싱턴의 부재와 에밀리의 현장 지휘 권한을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영하 작가님의 추리가 정확했다고 하네요.

 

브루클린 다리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따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맨해튼과 브루클린의 교류가 많아지면 상업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건너기도 하지만 걸어서 오고 가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을 예측한 에밀리의 선견지명이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브루클린 다리의 유명한 장면중 하나는 911 테러 당시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다리가 완공되고 이후에도 에밀리는 계속해서 공부했다고 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브루클린 다리의 건설에 숨겨진 기적과 같은 이야기에 대하여 들어봤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뜻을 이어가는 아들과 아내가 인상 깊었고 무엇보다 에밀리 로블링을 보면서 사회적 관념과 시대적 분위기라는 고정관념을 넘어서 자신의 능력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실패한 사람은 환경을 탓하고 성공한 사람은 환경을 자신에게 맞춰서 바꿔간다는 말이 기억났습니다.

포스팅을 하는 시점이 2023년을 시작하는 시기인데, 이번 영상을 보면서 올해는 환경 때문에 내게 어려움이 닥친다는 생각보다는 내게 주어진 환경을 나의 성장 요소로 바꿔보는 시기로 만들어 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아래 영상에서 캡쳐한 내용입니다. 상세한 내용은 링크한 영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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